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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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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탄은 1940년 대전에서 출생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바람 불다>가 당선되어 시인으로 등단했다. 1977년부터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시집 12권과 시선집 4권을 펴냈다. 1987년 중풍으로 쓰러졌으나 회복 후에도 시 창작 활동을 지속했으며, 월탄문학상, 한국시인협회상, 동서문학상, 기독교문화대상,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잡지 《미네르바》를 창간하기도 했으며, 2010년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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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탄 (시인)
기본 정보
사망일2010년 7월 31일
출처중앙일보

2. 생애

이탄은 1940년 대전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은 서울에서 보냈다. 1951년 1·4 후퇴 때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하여 10세 이후 소년 시절은 부산에서 보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입학하여 '대학시학회'에서 활동하며 문학적 소양을 키웠다.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바람 불다>가 당선되면서 '이탄'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1]

대학 졸업 후 대한교과서, 여원사, 서울신문사 등에서 편집 업무를 담당했고, 1975년부터 1980년까지는 저축 추진위원회 차장으로 근무했다.[1] 이 시기 단국대학교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국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1]

1967년 첫 시집 《바람 불다》를 시작으로, 《소등》, 《줄 풀기》, 《옮겨 앉지 않는 새》, 《대장간 앞을 지나며》 등 다수의 시집을 출간했다. 《소등》으로 월탄문학상, 《대장간 앞을 지나며》로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1] 신춘시 동인, ‘시학’ 동인, ‘손과 손가락’ 동인 등 다양한 문학 단체에서 활동하고, ‘현대시를 위한 실험무대’라는 시극 공연에도 참여했다.[1]

1987년 중풍으로 쓰러져 투병 생활을 하면서도 시 창작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다. 퇴원 후 시집 《미류나무는 그냥 그대로지만》(1988)에는 투병 생활의 경험이 담겨 있다. 2000년에는 시 <나무토막>으로 제8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했다.

2003년 다시 건강이 악화되었으나, 2005년 무사히 정년퇴임했다. 2009년 마지막 시집 《동네 아저씨》를 발간하고 2010년 7월 29일 향년 70세로 별세했다.

2. 1. 출생과 유년 시절

이탄은 1940년 어머니의 친가가 있는 대전에서 아버지 김홍권과 어머니 서인석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유년 시절은 서울에서 보냈으나, 1951년 1·4 후퇴 때 가족과 함께 부산으로 피난을 가면서 10세 이후 소년 시절은 부산에서 보냈다.

2. 2. 문학적 성장

이탄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에 입학하여 '대학시학회'에서 활동했다. 초기에는 어둡고 냉소적인 주제의 시를 썼으나, 1963년 대학 졸업 후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6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바람 불다>가 당선되면서 '이탄'이라는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했다.[1]

1963년부터 1969년까지 대한교과서 주식회사 편집부에서 근무하며 월간 ≪새소년≫ 편집장을 맡았다. 1969년부터 1970년까지 여원사 주간 TV가이드 편집부장, 1970년부터 1975년까지 서울신문사 편집2국 편집부장을 역임했다. 1975년부터 1980년까지는 저축 추진위원회 차장으로 근무했다.[1]

이 시기에 학문에 대한 관심을 키워 1975년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 진학하여 1977년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80년 한양대학교 대학원 국문과 박사 과정에 입학하여 1985년 박사 학위 논문 <박목월 시 연구>를 발표하고 졸업했다.[1]

2. 3. 시작(詩作) 활동과 문단 활동

이탄은 등단 이후 2010년 작고 전까지 시집 12권과 시선집 4권을 펴냈다. 1967년 첫 시집 《바람 불다》(장문사)를 펴냈으며, 서문은 당시 《현대문학》 주간이었던 조연현 평론가가 썼다. 1968년에는 조연현이 서문을 쓴 시집 《소등(消燈)》을 현대문학사에서 출간했다. 이 시집에 실린 '소등 연작'은 《바람 불다》의 시편들을 쓰면서 동시에 쓴 것들인데, 따로 한 책으로 꾸미기 위해 《바람 불다》에는 싣지 않았다고 한다. 시집 《소등》으로 이탄은 제3회 월탄문학상을 수상했다.[1]

1973년 결혼 후, 1975년에 제3시집 《줄 풀기》(어문각)를 펴냈다. 이후 시작(詩作)에 더욱 정진해 1979년에 시집 《옮겨 앉지 않는 새》(문학예술사), 1983년에는 다섯 번째 시집 《대장간 앞을 지나며》(민족문화사)를 펴냈다. 이 다섯 번째 시집으로 1984년 제16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했다. 1986년에는 시인의 시 작업을 중간 결산하는 성격을 가진 《잠들기 전에》(고려원)를 펴내기도 했다.[1]

이탄은 꾸준한 시작과 함께 적극적인 문단 활동을 했다. 등단하자마자 일간 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인들의 모임인 신춘시 동인에 가담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1967년에서 1968년까지 권오운, 김광협, 이성부, 최하림 등과 ‘시학’ 동인에 가담했고, 1975년에는 ‘손과 손가락’ 동인을 결성해서 주재했다. 또한 1979년부터 1982년 사이에 민예극단과 함께 강우식, 정진규, 이건청, 김후란, 이근배, 허영자, 김종해와 함께 ‘현대시를 위한 실험무대’라는 명칭으로 시극을 공연했다. 1980년에는 한국시인협회 사무국장으로 일했다.[1]

2. 4. 투병 생활과 후기 활동

1987년 1월, 이탄 시인은 중풍으로 쓰러져 수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병원에서는 회복이 힘들다고까지 했지만, 시인은 의식을 되찾고 처음부터 다시 배우듯이 우리말과 글을 익히며 기억을 복원해 나갔다. 기독교인이었던 시인은 투병 생활을 통해 신앙심이 더욱 깊어졌다고 한다. 퇴원 직후 출간한 시집 ≪미류나무는 그냥 그대로지만≫(1988)에는 입원 생활에 대해 쓴 시들이 실려 있는데, 여기서 병마를 극복하고자 했던 시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같은 해에 시선집 ≪약속≫과 ≪꽃은 깊은 밤 홀로≫를 펴냈고, 제3회 동서문학상을 받았다.

퇴원 후에도 완전히 회복하지 못해 말하기가 부자연스러웠지만, 이탄 시인은 시 창작에 더욱 몰두하여 이전보다 더 많은 시를 썼다. 1990년 ≪철마의 꿈≫, 1991년 자작시 해설 시선집 ≪한 잔 가득 별을 부어 마셨다≫, 1993년 ≪당신은 꽃≫, 1996년 ≪반쪽의 님≫, 1999년 ≪윤동주의 빛≫, ≪혼과 한잔≫ 등 10여 년 동안 신작 시집 5권과 시선집 1권을 출간했다. 1993년에는 제6회 기독교문화대상을 받았고, 2000년에는 시 <나무토막>으로 제8회 공초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문학잡지 ≪미네르바≫를 직접 창간했다.

2003년에 다시 쓰러져 건강이 악화되었지만, 이탄 시인은 이때에도 병마를 이겨내고 2005년에 무사히 정년퇴임했다. 2007년에는 ≪미네르바≫ 27호를 끝으로 잡지 운영에서 물러나 문효치 시인에게 운영권을 넘겼다. 2009년에는 생전에 마지막으로 펴낸 시집인 ≪동네 아저씨≫를 발간했다. 그러나 암이 발견되어 수술을 받아야 했다. 꿋꿋하게 투병했지만, 2010년 7월 29일, 향년 70세로 별세했다.

3.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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